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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냉정과 열정 사이 - 에쿠니 가오리

p64

-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You may not believe this -),

마빈은 멈춰 서서 놀랄 만큼 성실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처음이야.

 마빈의 말에서는 거짓말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 점에 매료되었으리라. 거의 동물적인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마빈이 언젠가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란 점도 나한테는 바람직했다.

- 그럼, 같이 살래요?

 내가 말하자, 마빈은 잠시 침묵하고, 그리고 마음이 상한 듯한 목소리로,

- 내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라고 물었다.

- 아오이의 기분을 묻고 있는 거야, 난.

- 진심이로군요(You are too serious).

 

p124

 나는 옷을 입고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볼륨으로 구노의 <파우스트>를 튼다. 음악이 천천히 방 안을 메운다.

 

 

 그다음 주, 오랜만에 다니엘라와 점심을 같이 했다.

 오전 중에 나는 도서관에 들렀고, 산타 마리아 델 레 그라치에 교회의 정원에서 잠시 책을 읽었다. 가을답게 기온이 낮고 구름이 끼어 있었다. 이런 날에는 늘 그렇듯, 회벽과 벽돌로 된 쿠폴라가 평소보다 다소 크게 보였다.

 

p125

 나는 책을 덮고, 거뭇거뭇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p143

 돌아가는 길, 마빈은 일부러 먼길로 돌아가 주었다. 내가 비 내리는 밤의 드라이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마빈의 차 안에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나는 앞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지그시 바라본다. 와이퍼의 움직임 밖에 있는 무수한, 자잘한 빗방울. 속도를 높이면 뒤로 흘러 튀는 물방울.

 용서받은 내가 여기에 있다.

 "마빈."

 사랑해요,라고 나는 말했다. 마빈은 앞을 향한 채, "설마! 정말이야?"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내 볼을 살며시 만졌다.

 "아오이는 나의 조이아(기쁨)야."

 이성적이기는 해도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갑자기 마빈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 듯한 기분이 솟구치고, 나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p157

 마스카니에서 시작하여 바그너에서 끝나는 카라얀의 앨범을 들으면서 외출할 준비를 했다. 창 밖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듯 찌뿌드드하다. 갓난아기를 안게 될 테니 향수는 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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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집어든 순간부터 몇 시간을 붙잡고 읽었습니다. 마침 주말이어서 아오이처럼 차를 내려마시거나 초콜릿을 하나씩 까먹으면서 읽다 보니 하루가 다 가있었습니다.

 읽으실 때에는 이따금씩 등장하는 아오이가 듣는 음악을 함께 듣거나 혹은 목욕을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작가의 문체가 그 음악에 매력을 더합니다.

  애절한 사랑이야기보다는 조용히 흘러가는 아오이의 하루와 그 하루하루를 관찰하는 표현이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드라마틱한 로맨스는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소 일본 특유의 조용한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사담이지만 저는 올 3월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많이 바빠질 예정이지만 잠깐씩은 이 책 속의 아오이처럼 느긋한 여유를 즐겼으면 합니다. 노을이 질 때 목욕을 한다던지 약속보다 30분 먼저 나와 책을 읽는 그런 삶을 꿈꿉니다.